안녕하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서로 다투는 것을 듣고, 그가 잘 대답하는 것을 보고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은 하나이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2:28-30. 마태복음 22:34-38, 누가복음 10:25-28 참조)
그게 다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그 사랑을 돌려주기를 원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수년에 걸쳐 우리 크리스천들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공부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친구들 중 적어도 한 명에게는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같은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공부를 좋아하거나 공부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으신가요? 당연히 아니죠. 그렇다면 많은 기독교 지도자와 교사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인데 왜 성경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저처럼 공부하는 타입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신학교에서 수년간 공부했고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제가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사랑이 많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제가 공부하기를 원하셨고 그분께서 저를 이끌어 주셨다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경전 공부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경전 공부를 권유한 적이 없으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경전 공부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너희가 경전을 찾는 것은 그 안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은 경전인데도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느니라.” (요한복음 5:39-40)
예수님도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나는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지혜롭고 배운 자들에게는 이런 것들을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니까요. (마태복음 11:25-26. 누가복음 10:21 참조).
알겠어요? 하나님은 지혜롭고 배운 자에게 숨겨둔 것을 어린아이에게 드러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통틀어 기독교인들은 지혜롭고 학식 있는 사람들, 즉 학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세상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네. 제가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이미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 제 글을 그만 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결정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오늘날 훌륭한 기독교 교사로 여겨지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로렌스 형제입니다. 아래 링크 참조).
신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드립니다.)
신학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신학” 또는 “조직신학”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공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신학’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의 본질과 종교적 신념에 대한 연구.” 또는 “체계적으로 발전된 종교적 신념과 이론 .”
그리고 ‘체계적’이라는 의미는
“정해진 계획이나 시스템에 따라 수행하거나 행동하는 것; 체계적.”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따뜻함과 친밀함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을까요?
조직신학을 강의하는 친구에게 지난 1700년 동안 신학이 밝혀낸 확실한 진리 한 가지를 꼽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몇 초간 생각한 후 그는 “신학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용도는 묻지 마세요. 저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신학이 다른 무엇보다도 예수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입니다. 이슈가 중요한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요? 한 가지 방법은 누군가의 영원한 구원이 그 문제에 대해 무엇을 믿느냐에 달려 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대답이 “아니오”라면 이 문제는 논쟁할 가치가 없는 문제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요?” 문서 참조). 아래 링크 참조)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을 듣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가르침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니요. 다음은 몇 가지 인용문입니다. 자유롭게 사용하세요.
“신학은 기독교의 가장 뛰어나고 똑똑한 많은 사람들이 거의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도록 만드는 악마의 전략입니다. 고통받는 세상의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절실히 복음을 듣고 제자화되어야 할 때 그들은 교리와 이론을 놓고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피터 올리버 |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금을 캐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많은 양의 쓸모없는 진흙을 샅샅이 뒤져서 드물게는 아주 조금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작고 밝은 얼룩 한두 개를 찾아내야 합니다.”
피터 올리버 |
“신학자들: 결정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하기로 결심하다… 끝없이.” 피터 올리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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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길을 걸을 때 우리를 축복하시고 격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Peter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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